베트남 다낭여행 3 후에 카이틴 황제릉 (8월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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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다낭여행 3 후에 카이틴 황제릉 (8월12일)
티웬루 사원을 돌아본 후에 점심 식사를 하였고 카이틴 황제릉으로 향했습니다. 이곳 주차장에서 잠시 왼쪽으로 가면 계단이 있는데 계단이 좀 많이 있습니다. 이곳을 돌아보기 전에 먼저 이곳을 이해하려면 응우옌왕조의 탄생에 대해서 알아봐야 합니다.
후에는 한국의 경주처럼 오랜 역사를 지닌 도시입니다. 다낭과 약 100km 떨어진 고대 베트남의 수도로, 베트남 마지막 왕조였던 응우옌 왕조가 후에를 수도로 삼고 베트남을 통치하였습니다.
베트남의 마지막 왕조인 응우옌 왕조는 1802년에서 1945년까지 지속되었습니다. 응우옌 왕조의 초대 황제인 가륭제는 광남성(즉 지금의 호이안 지역)의 호족이었습니다. 당시 타이 왕과 프랑스 선교사들의 도움을 얻어 내분에 시달리고 있던 떠이선 왕조를 몰아내고 후에에 수도를 정한 다음에 응우옌 왕조를 건국하였습니다.
가륭제는 의왕내제 체제 즉 외부적으로는 국왕으로 칭하면서 내부적으로는 황제를 칭하고 독립 연호를 사용하는 이중 체제를 도입했습니다. 그래서 후에에 위치한 응우옌 왕조의 능들을 “왕릉”이 아닌 “황릉”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카이딘황제는 응옌 왕조후기인 1916년부터 1925년까지 통지하였고 이곳은 1920년에 짓기 시작하여 1931년에 완성되었습니다, 난간에 새겨진 용을 따라 계단을 오르다 보면 큰 비석을 만납니다. 카이 딘 황제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그의 아들이자 응우옌 왕조의 마지막 황제인 바오다이가 세운 비석입니다.
그리고 계단을 올라가면 문관 무관 그리고 코끼리 석상이 황제를 보호하고 있습니다. 이곳은 다른 황제릉과 스타일이 다르기도 한데 프랑스 식민통치 때문에 유럽식 건축양식이 혼합되어 있습니다.
올라가면 위에 천경궁이 있습니다. 카이딘 황제는 자기 자신의 사욕을 위하여 프랑스 식민통치를 옹호하면서 생활이 방탕하였고 그로 인해서 베트남 국민들이 가장 미워하는 황제였다고 합니다.
이곳 천정궁에 들어가면 정말 화려한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이는 다른 말로 말하면 백성들의 고생이 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금박을 입힌 카이딘 황제의 등신상이 가운데 자리 잡고 있는데 황제의 유골은 이 동상 아래 지하 18m 깊이에 있다고 합니다. 정말 천정에 자기와 유리 등이 화려하고 현란스러울 정도입니다.
프랑스에 나라를 팔아먹고 자신을 위하여 돈을 사용하였는데 정말 아이러니 한 것은 이로 인해서 관광수입을 얻고 있다는 것입니다.
xã Thủy Bằng huyện Hương Thuỷ, Huế, Thừa Thiên Huế 530000 베트남
베트남 Thua Thien Hue, Thành phố Huế
Huế, Hương Hòa, Thành phố Huế, Thừa Thiên Huế 530000 베트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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